“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마19:30, 20:16)
“믿음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우리는 너무나 추상적인 대답들을 하고 있는 것을 많 이 보는데, 그것은 대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에서 추상적인 대답들을 하는 것을 보곤 한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진정한 믿음은 곧 “성경 말씀(=예수님)대로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 아닐까요? 예수님이 오셨 을 때에 이미 하나님의 은혜 안에 들어와 있던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그들의 혈통, 국가, 민족 들을 자랑하며 그들이 만든 틀을 벗어버리지 못하는 옛것의 생활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 었다. 그들의 마음에는 ‘예수’라는 새로운 것을 그들의 마음에 받아들이지를 못했다. 그들은 이미 그들만의 특권을 누리며 말씀이 없는 생활로 만족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더 이상의 그 들의 새로운 왕이 필요가 없었다. 새로운 왕의 출현은 곧 그들의 것을 잃어버리는 일이었기 때문 이었다. 하지만 소외되고, 병들은 사회적 약자들과 죄인과 세리들과 그들이 배척하는 이 방인들에게는 예수님의 등장은 신선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다가와서 그들의 아픔과 그들의 어려움을 함께하는 예수님은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 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며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며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였던(에 베소서 2:11-12) 그들에게 그들의 친구로서, 그들의 왕으로서, 그들의 구세주로서 조금도 손 색이 없는 분이셨다. 그들은 그런 예수님을 믿고, 그들은 예수님을 그들의 구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즉 새로운 피조물로서 예수 안으로 들어 온 것이다. 예수님이 오시므로 뒤 바뀐 것 - 내 것은 네 것으로, 얻음은 베풂으로, 군림하는 자는 종으로 등- 에 순순히 순종했던 것이다. 즉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삶으로 바뀌었다는 말이다. 구원에 있어서 예수님이 없는 삶에 대한 구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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