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과학

제2장 세계관과 창조-진화 논쟁

오직 예수 2007. 4. 2. 13:44
                        

                              

                 

                                          창조과학과 기원


제 2 장. 세계관과 창조-진화 논쟁


1.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1.1 정의 및 종류

  • 세계관(Worldview)의 정의

     “세계의 근본적 구성에 대해 갖는 일련의 전제들” - 사이어(J. Sire)

     “사물에 대한 기본신념의 종합적인 틀” - 월터스(A. Wolters)

    - 세계관은 세계를 바라볼 때 쓰고 있는 안경과 같다.

  • 세계관의 특징

   ⑴ 신앙에 기초하는 신념의 문제.

   ⑵ 공유적(sharable)이며 공동체적(communal).

      개인이 소유하지만 개인의 전유물은 아니며, 공유되고 공동체적인 성격을 가진다.

   ⑶ 다양하며 상대주의적.

   ⑷ 삶의 방향감각과 우선순위를 제시하는 나침반 역할.

   ⑸ 자신이 인지한 방식에 따라 무비판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 세계관의 대립

    ■ 창조론(creationism) : 초월적 존재인 창조주가 자유의지에 따라 우주만물을 만들

      었다고 믿음.

      ⇒ 삶의 최우선 목표 :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 진화론(evolutionism) : 우주만물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우연히 탄생한 것으로 해석.

      ⇒ 무신론적 유물론, 우연에 기초한 자연주의(naturalism)

      다윈(Charles Darwin) -「종의 기원 : 1895」년 출간

      굴드(Stephene J. Gould) -「교도권분리(nonoverlapping magisteria : NOMA)를 주창

         → 핵심내용 : 진화론은 과학이고 창조론은 종교이므로 양자를 분리하자는 것.

    ※ 그러나 두 이론은 모두 실험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신념이며 신앙이다.


1.2 진화론적 세계관

  •  그리스의 자연철학을 통해 학계로 들어왔으나, 철학적 기초는 르네상스시대의 인문주의

  cf. 인문주의(humanism) : 인간의 중요성과 능력을 중시하고 신의 영역을 극소화시키자는 주장

  •  이성주의(rationalism)와 계몽주의(illuminism 16-18C) - 교회의 권위에 대항, 이성에 근거한

     합리적 비판으로 인간생활을 개선하는 것을 목표

  •  세속인본주의(secular humanism), 뉴에이지 운동(new age movement), 포스트모더니즘

    (post modernism) 등과 손잡고 세계로 확산

  ※ 공통점 : 신을 배격하고 인간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

  ※ 화학진화론(chemical evolutionism) -「생명의 기원」,(1937 : 오파린(A. I. Oparin)

     → 다윈(Charles Darwin) -「종의 기원 : 1895」을 체계화 한 가설

     ⑴ 생물은 필요이상으로 출산한다.(overproduction)

     ⑵ 개체들 사이에는 변이가 일어난다.(individual variation)

     ⑶ 이들은 서로 경쟁한다.(mutual competition)

     ⑷ 환경에 가장 적응하는 자가 생존한다.(the survival of the fittest)

     ⑸ 이러한 방식으로 자연은 우량종을 선택한다.(natural selection)

      ⇒ 적자생존, 점진적인 진화가 일어난다.

   •  다윈주의의 모순이 밝혀지면서 이를 보완하려는 신 다윈주의, 신라마르크주의, 정향진화설

      현대종합이론, 분자진화설, 도약진화설 등의 대체이론이 등장

  ※ 도약진화설(punctuated equilibrium theory) : 신종이 일정한 주기로 갑자기 탄생

     한다.

      → 굴드가 주장(=괴물이론: minster theory)

1.3 창조론적 세계관(기독교적 세계관)

 •  창조론적 세계관은 성경에 기초한 기독교적 세계관이다.(창조, 타락, 구속)

  •  성경의 두 명령

   ⑴ 문화명령(cultural commendment) : 창세기 1:28 ⇒ 창조질서의 회복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

     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⑵ 대위명령(great commission) : 마태복음 28:19~20 ⇒ 영적 회복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

     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 기독교 세계관이 진화론적 세계관을 포함한 다른 세계관과 구별되며 우월한 이유

     - 네쉬(R. Nesh, 2003, 신학자)

   ⑴ 신에 대해 : 유일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초자연적 인격신으로 믿기 때문에 무신론ㆍ다신론

       범신론ㆍ유대교 등과 구분된다.

   ⑵ 신과 우주의 관계에 대해 : 무(無)에서 우주를 창조ㆍ간섭하시는 창조주를 믿으므로(로마서

       1:20) 자연주의, 이신론, 플라톤주의와 구분된다.

   ⑶ 인간의 감각에 대해 :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가능하다고 여기므로 인본주의와 구분된다.

   ⑷ 도덕법칙에 대해 : 창조주가 하나님 형상으로 인간을 창조했으며, 우주를 운행하는 자연법

       칙처럼 인간사회에는 도덕법(율법ㆍ양심)을 주셨다고 믿으므로 주관주의적 윤리학과 구분

       된다.

   ⑸ 인간에 대해 : 인간을 자유로운 존재로 이해하므로 결정론, 물질주의와 구분된다.


1.4 유신 진화론적 세계관

  “하나님이 진화를 통해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설” - 진화론과 창조론 양측에서 외면

  유신 진화론이 갖는 중요성은 세계학문의 중심역할을 하는 구미의 많은 지성인들이 이 이론을

  선택함. ⇒ 진화론에 너무 세뇌되어 있기 때문이다.


2. 주요 논쟁점

2.1 우주관

  •  창조론(creationism) : 하나님이 무(無)에서 우주를 창조.

  •  진화론(evolutionism) : 한 특이점(特異點)에서 우주계란 크기로 팽창했을 때 갑자기 폭발해

                                       형성됨. ⇒ 빅뱅설(Big Bang theory)을 주장.

※ 과학법칙(열역학법칙)에 위배   ↲

  ? 코페르니쿠스(Nikolai Copernicus, 폴)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 1543」지동설 주장

      → 그의 의도와 달리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닌 떠돌이별에 불과하며 인간도 특별한 존재

          가 아니라는 코페르니쿠스원리(Copernicus Principle)가 확산.

  ? 세이건(Carl Saigan, 미국 천문학자, 1992)

      → 지구를 “거대한 우주적 어둠에 둘러싸인 외로운 점”이라면서, 우리은하계에 100만개의

         선진문명이 있으리라 추리.

  •  최근 지구에는 생명체가 살기에 적합한 다양한 보호 장치가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짐.

     ⇒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인간중심원리(anthropic principle)」가 다시 부상함.

     <<지구의 특이성>> 참고


  •  카터(Brandon Carter, 1974, 영국 물리학자)

       “제 멋대로 보이는 물리적 상수들은 한 가지 이상의 공통점을 가진다. 만약 당신이 생명

     을 가진 우주를 만들기 위한다면 그것들이 정확히 당신이 필요로 하는 숫자들이 될 것이다.”

     ⇒ <<창세기 1장>> 참고

  

2.2 지층과 화석의 형성관

  •  다중격변설(multiple catastrophism)

     ⇒ 지구상에 잦은 국부홍수가 있었고, 최종적으로 전 지구적인 노아홍수(Noah's Flood)에 의

         한 격변으로 오늘의 지층과 화석이 형성되었다.

        - 큐비에(G. Cuvier, 1768-1832, 고생물학자, 프랑스)

 •  동일과정설(uniformitarianism)

     ⇒ 지형이 풍우와 기후에 의해 장기간에 점진적으로 형성되었으며, 지층은 하부에서

       상부로 차례로 축적되었다. - 허튼(James Hutton)과 라이엘(Charles Lyell), 지질학자,

         아일랜드

 •  격변설(catastrophism) : 노아홍수에 의한 대 격변으로 오늘의 지층과 화석 형성됨.

     - 모리스(Henry Morris)

    ※ 1980년 5월에 미국의 세인트헬렌스 산(Mt. Saint Hellens, Seattle)이 폭발하면서 며칠 새

   에  새로운 지층과 화석, 규화목, 토탄 및 계곡(Little Canyon)이 형성되어 지질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앞으로 자연과학계의 최대 쟁점은 창조-진화 논쟁에서 지구의 연대문제로 바뀔 것으

  로 모리스(1987)는 전망한 바 있다.

      <<세인트 헬렌스 산의 진노 - 장대한 폭발로 사라진 눈 덮인 산정>> 참고


2.3 생명관

 2.3.1 자연발생설 대 속생설

  •  자연발생설(abiogenesis) : 쇠고기를 거적으로 덮어두면 쥐가 저절로 생긴다.

                 → 17C 이산화탄소 발견을 한 벨지움의 화학자 헬몬트(Van Hermont)가 주장

                 → 영국의 박물학자 뷔퐁(George Buffon), 니이덤(John Needham, 1748)

                    프랑스의 라마르크(Jean Lamarck), 푸시에(Felix Pouchet) 등도 주장함.

  •  속생설(biogenesis) : 프랑스의 미생물학자 파스퇴르(Louis Pasteur)가 입증

                 →「자연발생설에 대한 실험적 검토, 1861」에서 “생명은 생명에서 나온다”

                    (life from life only"로 속생설을 입증, 2000년 지속된 자연발생 논쟁에 종지부.

 2.3.2 종의 가변설 대 불변설

  •  종의 불변설(fixity of species) : 린네(Carl Linneus, 1707-1778)가「자연의 체계, 1758」에

     서 주장  → 프랑스의 고생물학자 큐비에(1829)가 이를 지지, 확고한 이론으로 자리 잡음.

  •  유전법칙 : 멘델(Gregor Mendel)이 발견 - 진화론과 대치 → 진화론자들의 거부로 오스트리

     아의 부린 학회(Boulin Conference, 1865)에서 발표가 거부 됨. → 정설로 재발견(1900)

  ※ 진화론의 위기 : 돌연변이 유전설을 주장한 드브리스(De Veries)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가 유

   발 된다는 와이즈만(August Weisman, 1834-1914)의 신 다윈주의(Neo-darwinism), 유전현상

   을 진화론적으로 해석한 모건(Thomas H. Morgan, 1866-1945)등에 의해 모면.

     ⇒ 모건구룹이 초파리에 돌연변이를 유발시켜 신종을 만들려 했던 계획은 신종이 나

        타나지 않아 돌연변이가 퇴화 모델임을 보여 주었을 뿐이다.

     ∴ 종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2.3.3 인류기원과 인종분화 논쟁

  •  인류의 기원에 대해, 창조론에서는 노아의 대홍수 후에 방주에서 생존한 노아의 자손들이 시

     날(수메르) 평야로 이동했다고 말함.

  •  “진화론의 예언자”인 헥켈(Ernst H. Haeckel, 1834-1919)은 사람이 아메바ㆍ어류ㆍ도

    롱뇽ㆍ거북이ㆍ닭ㆍ원숭이를 거쳐 진화했다는 증거로 ‘배(胚) 발생도’를 만들어 홍보하면서,

    계통발생설을 주장

     ⇒ 이 그림이 정교하게 조작한 것으로 밝혀짐.

     ⇒ 영국의 발생학자 리처드슨(Michael Richardson, 1997) 등은 배 발생도가 “생물

         학에서 가장 유명한 위조사건 중 하나로 보인다.”고 논평 함.


3. 창조-진화의 주요 논쟁

3.1 미국 교육계의 창조-진화 논쟁

 3.1.1 ICR 대 진화론자들(굴드 등)

  •  ICR(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창조과학연구소, 1973)) - 창조론의 연구기관

  • 미국의 공교육이 창조론에서 진화론으로 이행되자 위기를 느낀 지질학자 모리스

   (Henry Morris), 생화학자 기쉬(Duane Gish), 신학자 휘트콤(John Whitcomb) 등이 창조과학

   연구회(Creation Research Society, 1961)와 함께 설립.

    → 굴드를 비롯한 진화론자들과 활발한 논쟁. ⇒ 진화론 측의 기피

 3.1.2 자연주의 대 지적설계 논쟁

  •  “진화론의 신 다윈주의적 해석에 대한 수학적 도전” 주제의 위스타 심포지엄(Pennsylvania

    Univ. 1966)에서 수학자 에덴(Eden), 슈첸버거(Marshal Schenberger), 메다워(Peter

    Medawar) 등이 “무작위적 선택에 의해 생명체가 발생할 확률은 불가능하다”고 지적.

  •  <<지적설계에 대해서>> 참고

                         

      <<지구의 특이성>>

   ex) 태양과 지구와의 거리(평균 1억 4960만 km)가 만약 거리가 가까워지거나 멀어진다면??

     ☞ 태양과 지구사이의 거리가 2배정도 멀어지게 되면

        태양빛을 받는 비율이 현재의 25%정도로 줄어들게 됩니다. 현재의 태양상수 는 약 2cal/㎠

   (1 ㎠당 2칼로리 정도의 에너지를 받고 있음.)인데 이것이 1/4 로 줄어들죠.(왜 1/4 이냐면

   거리가 2배로 멀어지면 가로 지름이 1/2 그리고 세로 지름이 1/2로 줄어서 면적으로는 1/4

   이 줄어드는 셈입니다. 3배 멀어진다면 1/9겠죠)

        일단 태양에서 오는 에너지가 적기 때문에 날씨가 추워지는 정도가 아니라 지구는 거의

   냉동 상태가 됩니다. 물론 어느 정도 대기가 보호해준다 하더라도 생물이 살기 어렵게 됩니

   다.남극 같은 경우도 영하 90 C 까지 내려감) 또한 2배가 멀어지면 일단 지구의 중력과 공전

   문제가 생깁니다. 일단 이속도 그대로 전진하는 상태에서 지구가 멀어지게 된다면 지구는 궤

   도를 뛰쳐나가게 될 것이고, 만약 속도가 맞게 된다면 2배 멀어진 만큼 1년이 길어지겠죠.

      그리고 약 2배 거리에 있는 화성과는 굉장히 가까워지게 됩니다. (화성의 의 평균기온이 영하

  20C입니다.)


     ☞ 지구의 산소의 양(21%)이 많아지거나 적어진다면 ???

      현재 지구 표면의 대기 중에는 산소가 질량으로 23.3% 포함되어 있습니다. 무게로 쳐도

   약 10억*10억(10억의 10억배)㎏이니 실로 엄청난 양입니다.

      사람은 보통 하루에 약 2백∼5백50ℓ(약3백∼8백g)의 산소가 필요합니다.

      그럼 산소함량이 20%에서 40%로 늘어나면 어떻게 될까요?

      일단 소방관들이 이전보다 훨씬 바빠지겠죠. 일반적으로 산소는 물질의 연소에서 필수적인

   항목입니다. 일반적으로 물질이 산소와 결합하는 반응을 산화라고 하는데 그 결합속도에 따

   라 철이 녹스는 것 같은 산화와 물질이 연소하는 반응, 그리고 급격한 산소결합인 폭발이 있습

   니다. 대기 중에 산소의 함량이 늘어 날 경우 당연히 불이 매우 잘 붙습니다. 금속의 산화반

   응, 즉 녹스는 정도도 더 빨라질 것이고요. 또 생태계의 대대적인 지각 변동이 있겠죠. 사람이

   나 대부분의 동물들은 산소함량이 10%정도 변하는 것으로는 큰 차이를 못 느끼죠. 그러나 몇

   몇 동물이나 식물들에게는 크나큰 타격이 될 것입니다. 자연은 하나라고 하죠. 몇 몇 동물이나

   식물이 없어져도 큰 상관없다고 할지 몰라도 이것은 자칫 생태계의 균형을 깨트릴 수 있죠. 

   특히 서서히 이러한 현상이 이러나면 모르지만 급격한 변화에는 특히 말이죠.

      그리고 많은 분들이 산소중독을 말씀하시는데 아마 산소 중독은 걱정 안하셔도 될 듯합니

   다.일반적인 대기압 하에서 10%정도의 산소가 더 함유되어 있다고 해서 중독되지는 않습니

   다. 또한 약간의 운동능력이 늘어날지는 모르지만 급격히 늘어난다고도 볼 수 없습니다. 산소

   와  헤모글로빈의 결합능력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급격한 변화를 보일 수는 없죠. 만약 산소가

   늘어나면 그만큼 운동능력이 늘어나서 산소통만 차면 달리는 자동차도 따라 잡을 수 있겠지요.

 

     1.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일반적으로 산소를 많이 마셔야 좋다고 알고 있는데, 이것은 그릇된 상식입니다. 왜냐하

   면 필요이상의 산소가 체에 흡수 될 경우 체내에 다량남아 항산화소를 발생시키는데 이곳이 혈

   관을 손상시켜 콜레스테롤 및 피 속 이물질들이 끼어 늘어나면서 혈관을 축소 또는 파열의 원

   인을 제공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심근경색 뇌출혈 및 피부 노화 가속화 와 암등을 유발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최근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ps. 대기 중 산소함량이 70% 이상 많다고 생각하면 담배 피우려고 라이터를 켜는 순간 북미대

   륙 크기의 폭발이 대기 중에 발생 할 수도 있습니다.

               

      <<세인트 헬렌스 산의 진노 - 장대한 폭발로 사라진 눈 덮인 산정>>

         (이 글은 비창조론자가 객관적으로 세인트 헬렌스산의 폭발의 위력을 기록한 글임)

        미국인들은 빨갛게 달아오른 용암류를 쏟아내며 터지는 화산 폭발을 보는 것은 남의 나

   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인접해있는 미국의 48개 주에서 지금까지 알려진 화산폭발

   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0년 5월18일 몇 명의 과학자와 텔레비전

   촬영팀들과 호기심에 찬 구경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워싱턴주 동부의 세인트 헬렌스산은 미

   국, 아니 전세계에서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자연 그대로의 화산의 격렬한 폭발을 보여 주었다.

   햇빛 찬란한 그날 아침의 폭발로 약 27㎞ 길이의 부채꼴 모양 지역 내의 생물은 모조리 죽어

   버렸다. 여러 곳의 호수와 강이 말라버렸으며, 화산이 내뿜은 검은 재와 가루가 3개 주를 뒤덮

   는 등 주변 경관은 그 폭발로 인해 크게 바뀌었다.

        18세기 영국의 한 외교관의 이름을 딴 세인트 헬렌스산은 캘리포니아 북부에서 브리티시

   컬럼비아(캐나다 서남부의 주)까지 걸쳐 있는 캐스케이드 산맥의 15개 화산 중의 하나이다.

   이 산맥의 레이니어산, 후드산, 베이커산(1975년에 잠깐 분출했다), 그리고 나머지 수려한 산봉

   우리들 모두 수백만 년 전부터 시작된 화산 폭발로 인한 용암과 암석 부스러기가 쌓여서 만들

   어진 것이다. 세인트 헬렌스산의 계류에는 송어와 연어가 살고, 숲속에는 고라니, 검은 꼬리사

   슴, 아메리카 라이온 등이 살고 있었다. 약 2900㎞ 높이의 눈 덮인 산정의 잔잔한 모습은 균형

   미가 뛰어나 가끔 미국의 후지산(富士山)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세인트 헬렌스산은 지극

   히 아름다운 외양과는 달리, 속으로 음험한 흉계를 꾸미고 있었다. 휴화산 지대에서의 화산 활

   동을 예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지질학에서 사용하는 '예보'라는 용어는 예상되는 사

   건의 발생 시간, 장소, 성질, 크기 등에 관해 비교적 정밀하게 설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

   나 1978년 두 사람의 지질학자가 예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부실한 '예보'를 발한 일이 있었

   다. 그것은 한 세기 이상이나 잠자고 있었던 세인트 헬렌스산에서 폭발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는 예보였다. 그들은 폭발 시간까지 예고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 산은 분명히 지켜보아야만

   할 산이었다. 화산 폭발의 조짐이 보인 최초의 신호는 1980년 3월20일 산봉우리 서북방에서

   시작해서 한 시간에 무려 40번이나 반복된 일련의 미진(愼震)이었다. 3월27일에는 드디어 폭

   발이 있었는데, 그것은 산꼭대기에서 1950m 상공으로 재와 증기를 뿜어 올렸다. 우르릉 소리

   가 산 중턱에서 계속 터져 나오고 표면 여기저기에 금이 가는 것이 눈에 보였으며, 직경 66m

   의 새로운 분화구가 하나 나타났다.

        이제 화산 관찰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지구과학자들의 팀이 모여들어 - 대부분

   은 미국지질조사연구소에서 온 과학자들이었다. - 인접한 밴쿠버시에 있는 연구소에 지휘소를

   마련했다. 각종 비행기들이 상공을 돌면서 지상의 변화를 사진에 담기도 하고 분출된 가스의

   견본을 채취하면서 계속 넓어지고 깊어지는 분화구를 응시했다. 모든 방식의 모니터 장치가 -

   지진계, 경사계(지구 표면의 경사를 측정하는 계기), 온도계 등 - 선정된 장소에 설치되었다.

        가장 불길한 징조는 나날이 커지는 북쪽 사면(斜面)의 팽대 현상이었다. 특히 관측자들의

   시선을 끈 것은 하루에 1.5m씩 불어나는 산허리의 돌출 부위였는데, 그것은 마침내 사면에

   서 90m 넘게 튀어나왔다. 그 돌출부위는 위협적으로 보이스카우트 캠프와 휴양숙박 시설이

   있는 스피리트호를 향하고 있었다. 워싱턴 주지사 딕시 리 레이 여사는 산꼭대기를 중심으로

   반경 8㎞를 '출입금지 구역' 으로 설정한 후 주민들을 소개시키고, 이곳으로 통하는 도로들을

   차단했다. 이 조치에 대해 반대했던 83세의 해리 트루먼은 스피리트호에 인접해 있는 자기 집

   을 비우기를 완강히 거절했다. 트루먼 대통령과 이름이 같은 이 완고한 트루먼 옹은 53년간이

   나 그곳의 호수와 산과 더불어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는 관청의 명령이나 자연의 위협 따위에

   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일요일인 5월18일은 청명하고 아름다운 날씨여서 송어 철의 개시를 축하하고 봄의 기쁨

   을 만끽하기에 알맞은 날이었다. 그러나 오전 8월32분 세인트 헬렌스산이 터져 삽시간에 그림

   엽서처럼 아름답던 경치가 흉한 모습으로 변했다.

        후에 지질학자들은 그 대참사는 거의 동시에 발생한 네 개의 사건 때문에 촉발되었다고

   결론 내렸다. 중간 정도의 지진이 산 밑 멀지 않은 곳에서 일어났다. 동시에 사상 최대라고

   할만한 큰 산사태가 발생하여 북쪽 사면이 스피리트호와 투틀강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뜨거운 가스가 암장(暗葬)에서 뿜어져 나와 지하수가 증기로 변하고 이것들이 합쳐

   지면서 새로 노출된 북면(北面)을 뚫고 어마어마한 수평 폭발이 일어났다. 이어서 새로 노출

   된 북면에서는 분기공(噴氣孔)이 하나 수직으로 뚫리면서 또 한 차례의 폭발이 일어났는데, 이

   폭발로 재와 혼합된 연기 기둥이 20㎞ 높이의 상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산사태로 생긴 유동체와 파편들이 지면을 훑어 내리자, 뒤이어 불어온 폭풍은 최고 시

   속 400㎞의 속도로 북쪽 27㎞ 지점까지 휩쓸었다. 폭풍 때문에 500㎢ 가량의 지역에서 약

   600만 그루의 나무들이 뿌리째 뽑히거나 쓰러졌다. 이 지역에서 죽은 62명의 사망자들은 더러

   나무에 깔려 죽거나 재에 의해 질식사했을 가능성이 높다.

        사망자 중 한 사람인 30세의 데이비드 A. 존스턴은 세인트 헬렌스산에 일차로 도착한 미

   국 지질조사연구소 조사단의 일원으로서 토질견본 채취를 위해 분화구로 내려갈 것을 자원했

   다. 운명의 그날 아침 그는 산꼭대기에서 8.8㎞ 지점에 있는 관측소에 있었는데 별다른 위험 없

   이 안전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그 불길한 돌출 부위를 지켜보고 있다가 그것이 움직이는 것

   을 보자 무전기에다 대고 '밴쿠버! 밴쿠버! 이게 바로 그겁니다!' 하고 크게 외쳤다. 이것이 존스

   턴이 마지막 남긴 말이 되고 말았다.

        폭풍의 강도와 열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스피리트호 건너편 해리 트루먼옹이 막무

   가 내로 버티고 있던 지점에 갑자기 12m의 높이로 뜨거운 진흙이 밀어닥쳤다. 직경이 18m나

   되는 표석(漂石)들이 8㎞를 날아오거나 굴러왔다. 한 부부가 세인트 헬렌스산 북쪽 18㎞지점

   의한 호숫가로 몰고 온 이동 주택이 180m나 날아갔다. 세인트 헬렌스산 북쪽 20㎞ 지점에 세

   워둔 트럭의 플라스틱 부품 전체가 녹아 버렸다. 폭발지점에서 26㎞ 떨어진 그린강에서 고기

   를 잡고 있던 어부들은 심한 화상을 입었지만, 물속으로 뛰어들어 목숨만은 건졌다. 하늘 높

   이 솟아 균형미를 자랑하던 산봉우리는 390m나 무너져 내려 분화구가 뚫린 폐산으로 변하고

   말았다.

        섬뜩한 이야기이지만 일요일이 아닌 평일에 폭발이 일어났더라면 사망자수는 더 늘어났

   을 것이다. 왜냐하면 평일에는 약 300명이나 되는 벌목 인부들이 위험 지역 밖에 안전한 곳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이제 폐허가 된 그 일대에서 일하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운 좋게

   도 화산 폭발로 일어난 범람은 예상한 지점에까지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그 범람은 '이류(泥

   流)' 때문에 매우 고약했다. 수분과 재와 폭발로 산산조각이 난 바윗돌의 뜨거운 혼합물이 북쪽

   을 휩쓸고 나서 스피리트호 저쪽에 있는 산마루를 사정없이 강타했고, 서쪽으로는 투틀강 유역

   으로 밀어 닥쳤다. 그곳에서 그 혼합물이 쌓여 길이 20㎞, 폭 1.6㎞ 깊이 수백 미터의 산더미

   를 만들고, 북쪽과 남쪽의 투틀강 지류를 둘 다 기록적으로 범람하게 만들었다. 이 퇴적물에서

   혼류(混流)가 계속 흘러내려 카울리츠강을 막고, 그 큰 컬럼비아강의 수심을 12m에서 5m로

   낮추었다. 따라서 바다로 나가는 배들은 포틀랜드항(港)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이류(泥流)' 가 흘러내리면서 세 사람 이상이 죽었고, 엄청난 양의 암석 파편과 베어낸 재

   목을 휩쓸어 감으로써 컬럼비아강 위에 32㎞에 걸쳐 뗏목이 적체현상을 빚어냈다. 또한 수백

   만 마리의 치누크연어와 무지개송어도 떼죽음을 당했다. 투틀강과 카울리츠강의 지나친 수온

   상승 때문에 죽은 것도 더러 있고 대부분은 아가미에 화산재가 끼어서 죽었다.

        일차적인 위기는 지나갔으나 광범한 범람 위협은 남아 있었다. 나무들은 폭풍에 쓰러지

   고 초목이 연기와 재에 덮이고, 사면(斜面)마다 지표가 새로운 화산재로 뒤덮여 침식 현상이 일

   어 났다. 세인트 헬렌스산은 간간이 이류(泥流)를 토해내면서 폭발을 계속했다. 이듬해 봄의 우

   기를 생각해서 미육군 공병대는 여름부터 겨울까지 댐과 제방을 쌓고 안전한 방향으로 수로

   를 뚫고 준설 작업을 하면서 - 무엇보다도 이 작업에 역점을 두었다 - 엉망이 된 자연의 복구

   작업에 힘썼다. 1981년 11월까지 공병대는 투틀강, 카울리츠강 그리고 컬럼비아강에서 76만

   ㎥의 암석 부스러기를 퍼 올렸다. 또한 여러 달 동안 2억5천만 달러를 들여 여러 개의 수로

   를 뚫고 컬럼비아강에 다시 배가 다닐 수 있도록 만들었다.

        세인트 헬렌스산의 폭발로 재와 파편들이 뒤섞인 연기 기둥이 하늘 높이 치솟았는데, 그

   연기 기둥은 엄청나게 커서 길고 무시무시한 섬광이 일어날 정도였다. 그 연기는 구름이 되

   어 바람을 타고 동쪽으로 흘러가서 워싱턴주 동부, 아이다호주, 몬태나주 상공에 이르러 새까

   만 눈처럼 내려앉았다. 정오 전에 화산 동쪽 약 136㎞지점에 위치한 5만1000명의 도시 야키

   마 상공은 맑게 개였던 하늘이 한밤중의 암흑으로 변했다. 그것은 한밤중보다도 더 어두웠다.

   헤드라이트조차 소용없었다.

        최초의 폭발 1주일 후와 18일 후에 다시 화산이 폭발하여, 새로 분출된 재는 서쪽으로 오

   리건주 서북부에까지 갔고, 워싱턴주의 여러 다른 지역 상공을 뒤덮었다. 화산재가 떨어진 곳

   은 어디나 발전기와 엔진의 작동이 멎고, 공기 여과기가 막히고, 교통이 거의 마비되었다. 바람

   이 불거나 차량이 자나가서 화산재가 휘저어 날면 사람들은 마스크를 해야 했다. 화산재는 좀

   처럼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며, 물은 단지 그것을 돌아 나갈 뿐이었다. 치명적은 아니었지

   만 봄 작물도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나무에 앉은 먼지가 세찬 바람에 저절로 날아가기도 하

   고, 호스로 나무에 물을 뿌리기도 해서 유명한 워싱턴의 사과는 건질 수 있었다. 더욱 다행한

   것은 화산재에 독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피해를 입었다. 그것은

   안락한 문명을 건설했던 과학도 파괴적인 자연계의 폭발을 막는 데에는 무력하다는 인식에서

   오는 절망감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 참사의 결과로 자연의 신속한 회복력을 다시 깨닫게 되

   었다. 어떤 초목은 폭발 지역에서도 결국 살아남았다. 특히 눈이 깊이 쌓여 있던 곳에서 그랬

   다. 곧 회색재 사이를 헤치고, 곧추 선 허클베리, 그리고 말라도 빛깔이나 모양이 변하지 않는

   루피너스 - 루피너스 뿌리는 질소를 식물의 양분으로 전환시키기 때문에 중요하다 - 와 같은

   잡초들이 자라났다. 애벌랜치릴리가 자라기 시작했는데, 이것이야말로 부활의 진짜 상징이었

   다. 개미와 땅다람쥐도 또한 살아 있었는데, 이들이 요긴하게도 자기들의 지하통로를 따라 메마

   른 재와 자양분이 있는 토양을 골고루 섞어 주었다. 이주성(移住性)의 포자(胞子)가 식물을 증

   식 시켰다. 5200마리의 고라니와 6000마리의 검은 꼬리 사슴이 함께 몰살당한 곳에는 이주성

   의 고라니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개구리와 도롱뇽들이 시냇가를 따라 뛰노는 모습이 눈에 띄

   었다. 지진 진원지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연못가에서 버드나무와 붉은 오리

   나무가 뿌리를 내렸다. 세인트 헬렌스산 주위의 공유지는 오늘날 4만 헥타르의 국립기념물

   겸 관광명소가 되었고, 대폭발이 있은 지 3년도 되기 전에 이 지역에 원래 살고 있던 식물의

   종(種)의 90퍼센트가 다시 옛 모습을 나타냈다.

        과학자들은 세인트 헬렌스산의 폭발로 예보기술의 개발과 증진을 위한 연구 기회를 얻었다.

   대폭발 이후의 계속적인 화산 활동에 관한 예보 기록은 매우 극적이었다. 즉 그후 7년 동안

   일어난 스물네번의 폭발 중 대부분은 정확하게 예보되었고, 경우에 따라 며칠의 차이가 나

   기도 했다. 캐스케이드 산맥의 다른 봉우리들이 앞으로 200-300년 이내에 폭발할 것이라고

   예고하는 것은 가능하다. 또한 다음 폭발이 언제 일어나든지 간에 인류는 지각 밑에는 지옥불

   이 있지만, 그 속에는 또한 영구적인 자양분도 있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될 것이다.

                                     *한국창조과학회 자료실/지질학/세인트 헬렌산

                                     http://www.kacr.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G06

        *한국창조과학회 자료실/노아의 홍수/격변적 지층형성에 있는 많은 자료들을 참조하세요

                                     http://www.kacr.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C04

 

 

                             

       <<지적설계에 대해서>> 김창환

        19세기 초 윌리엄 팔레이(William Paley)는 그의 책 『자연신학(Natural Theology)』에

   다음과 같은 논증을 폈다.

      ……풀밭을 걸어가다가 <돌> 하나가 발에 채였다고 상상해 보자.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거

   기에 있게 되었는지 의문을 품는다고 가정해 보자. 내가 알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그것은 항상

   거기에 놓여 있었다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답의 어리석음을 입증하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돌이 아니라 <시계>를 발견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어떻게 그것이 그

   장소에 있게 되었는지 답해야 한다면, 앞에서 했던 것 같은 대답, 즉 잘은 모르지만  그 시계는

   항상 거기에 있었다는 대답은 거의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시계는 제작자가  있어야 한다.

   즉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선가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의 제작자들이 존재해야  한다. 그는 의

   도적으로 그것을 만들었다. 그는 시계의 제작법을 알고 있으며 그것의 용도를 설계했다.……

   시계 속에 존재하는 설계의 증거, 그것이 설계되었다는 모든 증거는 자연의 작품에도 존재한다.

   그런데 그 차이점은 자연의 작품 쪽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또는 그 이상 으로 훨씬 더 복잡하

   다는 것이다.……


        팔레이의 시대에는 자연의 작품, 특히 생명체가 지적 설계의 산물이라는 관점이 일반적이었

   다. 그러나 다윈의 진화론이 학계를 석권하게 되어 생명체가 설계되었다는 관점은 폐기처 분 되

   었고 다윈이 제안한 메커니즘 즉, 돌연변이/자연선택이 생명체의 복잡성에 대한 표준적인 설

   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생명체가 설계되었다는 관점을 무지몽매하던 시기에

   유행하던 어처구니없는 이야기 정도로 간단히 치부해버린다.

        팔레이가 위의 인용문을 썼던 때로부터 대략 이백년이 지난 지금, 놀랍게도 미국에서는 지

   적 설계 이론(Intelligent Design Theory), 또는 지적 설계 운동(Intelligent Design Movement)

   이라고 불리는 것이 급부상하고 있다. 이것은 백년도 더 전에 다윈이 처리해버린 그 이론이 아

   닌가? 지성이 퇴보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중요 사건들을 순서대로 살펴보면서 지적

   설계 이론 또는 운동의 특징들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지적 설계는 1991년 필립 존슨(Phillip E. Johnson)의 책 『심판대 위의 다윈(Darwin on

   Trial)』의 출판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여겨진다. 이 책에서 존슨은 다윈의 이론이 자연주의라는

   철학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한 그는 창조의 핵심은 타이밍이나 

   메커니즘이 아니라 목적을 가지고 설계되었다는 데에 있다고 역설하였다. 그의 책은 의외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1992년에는 '다윈주의; 과학인가 철학인가'라는 컨퍼런스가 열리게 되

   었다. 그 컨퍼런스는 지적 설계의 주요 인물들이 서로 만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고전적인 설계 논증의 문제점은 설계라는 개념, 혹은 설계되었다고 판명할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데에 있었다. 예를 들어 디오게네스는 사계절의 배열이 너무도 놀랍고 완벽해서 지성이

   개입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만약 그가 하와이에 살았다면 한 계절만 계

   속되는 것이야말로 완벽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설계 논증이 

   런 식으로 개인적인 느낌에 크게 의존하는 것이라면 거의 설득력이 없을 것이다. 이점을 이해한

   지적 설계의 주요 인물들은 1992년의 컨퍼런스 이후에 지적 설계에서 주관적인 것을 제거하고

   객관화시키는 일에 주력하면서 여러 가지 시도를 했다.

        1996년에 지적 설계는 구체적인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그 해에는 두 가지 중요한 일이

   일어났는데, 하나는 『다윈의 블랙박스(Darwin's Black Box)』의 출판이고 또 하나는 'Mere

    Creation'이라는 이름의 컨퍼런스가 열린 것이다.

       『다윈의 블랙박스(Darwin's Black Box)』는 생화학자인 마이클 베히(Michael Behe)가 쓴

   책으로 어떤 생화학적 시스템들은 다윈의 메커니즘으로 결코 생성될 수 없다는 주장을 담고 있

   다. 베히는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Irreducible Complexity)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지적 설계의

   기준으로 제시하였다. 여기서의 요점은 주관적인 느낌과 관계없이 경험적으로 지적 설계를 탐

   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Mere Creation' 컨퍼런스는 그 이름에서부터 시사해 주는 바가 있다. 이 이름은 '내

   가 믿는 기독교,' 또는 '순전한 기독교'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는 C. S. 루이스의 책 'Mere  

   Christianity'에서 따온 것이다. 루이스는 자기 책에서 종파간 논쟁이 되는 문제는 접어놓고 모

   든 기독교 종파가 인정하는 것만을 설명하고 옹호하였다. 그는 지적하기를 많은 사람들이 '순전

   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를 옹호하기보다는 그처럼 논쟁적인 문제들에 몰두해왔'다고 하

   였다. 여러 가지 입장으로 나누어져 있는 창조론 진영에 있어서 확실히 공통되는 부분은 지적

   설계이다. 지적 설계 이론은 창조론에 '다양성 가운데 일치'를 제공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1998년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책이 출판되었다. 윌리엄 뎀스키(William Dembski)의 『설계

   추론(Design Inference)』이 그것이다. 이 책에서 뎀스키는 지적 설계를 탐지하는 과정을 수

   과 형식논리학을 사용하여 엄밀하게 구성해내었다. 주관적인 느낌 같은 것은 완전히 배제된 것

   이다. 뿐만 아니라 뎀스키는 지적 설계를 정보이론으로 기술하기도 하였다.

        지금은 지적 설계를 옹호하는 적지 않은 학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며 여러 책을 쓰고 있다. 

   이들은 자연주의에 반대한다. 자연주의가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데에 반대한다.

   자연주의가 그 지배적인 권좌에서 내려오면 다윈의 이론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을 것이며 지적

   설계를 반대할 이유도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한다.

        뎀스키는 그의 책 『지적 설계(Intelligent Design)』의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지적 설계는 하나의 과학적 연구 프로그램이며, 학문 영역에서의 자연주의에 대한 도전이

   며, 하나님의 활동을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동시에 지적 설계는 시작되지 몇 년 되지 않은 운동으로서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

   고 현재 빠르게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국내 언론에도 언급된 바 있는 1999년 8월 캔자스주 

   교육위원회가 교육지침에서 대진화와 빅뱅을 제외한다는 결정을 내리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

   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창조과학회 자료실/창조의 신비/지적설계에 있는 자료들을 참조하세요.

                     http://www.kacr.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A06

          출처 : 창조지

          URL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amazement/a4/a4/a4o10.htm

          URL : http://www.creation.net/noa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