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홍수와 근거 1
★ 노아의 홍수 ★
♣ 노아 홍수의 원인
☞ 불순종의 결과
⇒ 창세기 6장 5~6절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 하나님을 떠난 생활
⇒ 창세기 6장 13절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 노아 홍수의 진행(연대기)
☞ 홍수 전 120년에 방주를 만들기 시작 함.(창 6:14)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 방주에 들어감.(창 7:6~9)
“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육백 세라 노아가 아들들과 아내와 자부들과 함께 홍수를 피
하여 방주로 들어갔고,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이 하나님이 노
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더니”
☞ 홍수의 시작.(창 7:11~12)
“노아 육백 세 되던 해 이월 곧 그 달 십칠일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
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 땅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음.(창 7:21)
⇒ 물이 일백오십 일을 땅에 창일하였음.(창 7:24) → 일백오십 일 후에 물이 감함.(창 8:3)
⇒ 사십 일후 창을 열고 까마귀를 내 보냄.(창 8:7)
⇒ 또 칠 일 후 비둘기를 내 보냄. → 감람 새 잎사귀를 물고 옴.(창 8:10~11)
⇒ 또 칠 일 후 비둘기를 내 보냄. → 다시 돌아오지 않음.(창 8:12)
⇒ 이월 이십칠일에 땅이 마름.(창 8:14)
⇒ 방주에서 나옴.(창 8:15~19)
☞ 무지개를 주어 언약을 주심.(창 12~17)
☞ 홍수의 총 기간 : 1년 10일간
♣ 노아 홍수의 결과
☞ 지각대변동 ⇒ 대 격변설(창 7:17~21)
⇒ “홍수가 땅에서 사십일을 있었는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물이 더 많아
져 땅에 창일하매 방주가 물 위에 떠다녔으며 물이 땅에 더욱 창일하매 천하에 높은 산
이 다 덮였더니 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 오르매 산들이 덮인 지라 땅 위에 움직이는 생
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 홍수의 지각 변동으로 인하여 높은 산이 생기고 생태 환경 및 지구 환경이 바뀜.
⇒ 아열대성 기후 → 남극과 북극을 중심(지축의 변화)으로 빙하시대 도래.
⇒ 공룡 및 수많은 종의 멸종.
⇒ 지구의 산소량과 기압이 줄어듬.(30% 산소, 2기압 → 21%)
* 생명체가 살기에 가장 적합한 비율
♣ 노아 홍수의 증거<<연대측정의 원리>>
• 동일과정설(uniformitarianism)
⇒ 지형이 풍우와 기후에 의해 장기간에 점진적으로 형성되었으며, 지층은 하부에서
상부로 차례로 축적되었다.
⇒ 모순점 : 다지층 나무의 화석, 중간 단계 실종 등에 대한 설명을 못함.
• 격변설(catastrophism) : 노아홍수에 의한 대 격변으로 오늘의 지층과 화석이 형성.
⇒ 지구 역사는 6,000~7,000년 전에 시작.
⇒ 짧은 연대에 관한 증거가 계속 나타나고 있음.
※ 다지층 화석들
ㆍ수미터 이상 퇴적층을 관통하여 서 있는 다지층 나무화석들의 존재는 동일과정설로는 수수께
끼임.
ㆍ동일과정설에 의하면 30cm의 퇴적층이 쌓이는데 약 5000년이 걸림.
<<"노아의 大홍수는 실제"…흑해 해저서 7500년 전 집 발견>>
성서에 기록된 노아의 홍수와 유사한 대홍수를 인류가 겪었음을 알려주는 7500여년 전의 오래된 가옥이 흑해의 바닥에서 발견됐다고 13일 LA타임스가 전했다.
이 신문은 침몰된 타이타닉호를 발견했던 해저탐험가 로버트 밸러드의 탐사팀이 터키 연안에서 19㎞ 떨어진 수심 900m의 바닷속에서 인류가 거주한 흔적을 찾아냈다고 전했다. 밸러드는 “이번 발견은 유럽 고대문명사를 다시 쓰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탐사팀의 일원인 고고학자 프레드릭 히버트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이번 탐사를 ‘흑해 프로젝트’라고 소개하며 “이번 발견은 대홍수 이전 흑해 연안에 사람들이 거주했다는 최초의 구체적 증거”라고 말했다.
탐사팀은 음파탐지기가 탑재된 원격조종 잠수정을 이용했으며 수심 약 900m 지점에서 세로 11.7m, 가로 3.9m의 직육각형 형태로 잘 다듬어진 모양의 헛간을 발견했다. 또한 통나무 조각, 잘 닦인 돌 뭉치와 잡동사니 무더기 등 사람이 거주한 흔적을 보여주는 다른 도구들도 발견했다.
흑해에 대한 관심은 컬럼비아대의 고고학자인 윌리엄 라이언 등이 1997년 공동으로 펴낸 책 ‘노아의 홍수’에서 7000여년 전 유럽의 빙하가 녹으면서 조그마한 호수로 흘러들어 흑해를 만들었다고 주장한 뒤 본격적으로 높아졌다.
밸러드는 “지난해에는 흑해 바닷속의 고대 해안선에서 7000여년 된 민물조개와 바다조개 껍데기를 동시에 발견했다”며 “이는 7000여년 전 흑해가 민물에서 바닷물로 바뀐 갑작스럽고 거대한 사건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권기태기자>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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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과학의 만남>> 노아홍수 (中) / [국민일보 2005-05-13 15:07]
“…모든 짐승이 그 종류대로, 모든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모든 새 곧 각양의 새가 그 종류대로, 무릇 기식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창 7:14∼15)
★ 방주 용량의 타당성도대체 방주의 크기가 어느 정도였기에 이렇게 많은 동물을 수용할 수 있었다는 말인가. 뿐만 아니라 그 많은 동물이 들어갈 만큼 컸던 방주의 안정성은 확보돼 있었다는 말인가? 노아홍수를 부정하는 학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부분에 대해 회의적이다.
성서의 기록에 따르면 방주는 길이 300규빗, 너비 50규빗, 높이 30규빗(창 6:15) 규모로 제작됐다. 규빗은 당시 도량형 단위였다. 1규빗(큐빗·cubit)을 지금의 단위로 환산하면 18인치 정도에 해당한다. 아무튼 성서에 소개되고 있는 1규빗은 45㎝보다 길었을 것이란 게 일반적인 견해다. 따라서 1규빗을 최소한 45㎝로 계산하더라도 방주의 크기는 길이 135m,너비 22.5m,높이 13.5m에 해당한다. 축구장의 길이(국제규격)가 100∼114m임을 감안하면 방주는 그것보다 더 길게 제작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의 넓이를 계산하면 4만1006.25㎥로 화물 운반용 기차 522량에 해당한다.
방주의 특징은 배가 아니라는 데 있다. 범선이 아니었기 때문에 거기에는 돛은 물론 노와 키 등 추진 수단이 전혀 없었다. 창조과학자들은 이 부분에 대해 많은 이들이 오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방주는 순전히 화물을 싣기 위해 디자인된 것이었다. 그래서 영어성경에는 방주를 ‘ark’(상자)로 번역하고 있다(창 8:4?NIV, KJV, NASB).거대한 상자로, 오직 저장 공간만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방주의 안정성은 어느 정도였을까? 통상 배의 안정성은 그것의 구조비율에 의해 결정되는데 파도에 의해 배가 부서지는 정도인 구조 안정성, 배가 기울어졌다가 다시 평형을 이루는 복원 안정성, 배안의 화물들이 안정하게 유지되는 파랑 안정성 등이 바로 그것이다. 대형선박으로 세계에 널리 알려진 퀸엘리자베스 호는 그 비율(길이: 너비)이 8.16대1이며 캔버라 호는 8.2대1이다. 몇몇 대형 유조선들은 대략 7대1에 가깝다. 조선기술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들은 모두 속도를 감안, 설계된 것인데 속도가 낮으면 낮을수록 6대1의 비율에 가깝게 접근한다는 것이다. 방주의 길이와 폭의 비율은 300대50 즉,6대1에 해당된다.
한국창조과학회가 1993년 한국의 해사 기술연구소에 의뢰, 노아방주의 안정성을 확인한 결과 안정성이 매우 탁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방주와 동일한 부피를 가지면서 길이와 너비, 그리고 높이의 비율만 다르게 한 13척의 배를 선정, 안정성을 비교 검토했다. 실험은 13척 모두 50분의 1 축소 모형으로 실시됐다. 그 결과 방주만이 파도의 높이가 43m 이하에서 파랑 안정성과 복원 안정성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방주를 건조한 나무의 두께가 30㎝ 이상이었다면 30m 이상의 파도에도 파손되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미국선급협회(ABS)에서는 파도 높이가 40m 이상일 때는 배안으로 바닷물이 들어올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지금까지 바다에서 발생한 가장 큰 파도의 높이는 30m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방주는 최악의 경우에도 놀랄 만큼 안정성이 확보돼 있었다는 결론이다.
이런 크기와 안정성이 확보된 방주에 과연 얼마만큼의 동물들이 들어갔을까? 미국의 분류학자인 어언스트 마이어에 따르면 현존하는 동물의 종류는 포유류 3500종, 양서류와 파충류 5500종, 조류 8600종, 어류 1만8000종, 피막동물 1700종, 극피동물 4700종, 절지동물 81만5000종, 연체동물 8만8000종, 곤충 2만5000종, 강장동물 1만종, 해면동물 5000종, 원생동물 1만5000종 등으로 모두 100만종에 이른다. 이 가운데 94만2400종 이상이 물속에 사는 동물이기 때문에 방주에 수용될 필요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포유동물이라 해도 고래나 대부분의 양서류는 물론이고 곤충도 다수가 물속에서 생존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 방주에 수용된 동물은 이보다 훨씬 적었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에 따라 최대 1만7600종이 방주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으며 이들을 암수 한 쌍 씩으로 계산하면 3만5200마리가 된다. 방주 용적으로 볼 때 대략 양 12만5280마리 정도가 들어갈 수 있다. 동물 1마리의 부피를 양 1마리로 계산하더라도 이들 동물이 차지한 용적은 겨우 방주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이런 과학적 계산을 하지 않고 추상적 개념으로 성서에 접근, 부정하려는 시도는 ‘과학의 오만’이 아닐 수 없다.
◇도움말 주신 분 △한국창조과학회 △심영기 교수(인제대 나노공학부)
△왕대일 교수(감신대 구약학) △김완모 박사(숭실대 기독교학과 겸임교수)
[팝뉴스 2006-03-10 11:14]
<<위성사진 공개, '노아의 방주 미스터리' 다시 논란>>
미국 일간 USA 투데이는 9일자 온라인 기사에서 '노아의 방주 미스터리'가 또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부 연구자들이 '노아의 방주'로 주장해 온 물체(혹은 지형)를 담은 선명한 위성사진이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포르세 테일러 등 노아의 방주 연구자들은 성서에 묘사된 40일 대홍수가 끝난 뒤 방주가 터키 아라랏 산에 안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해왔다. 그 증거로서 4663미터 높이의 산허리에 있는 비정상적인 지형의 항공 및 위성 촬영 사진이 제시되어 왔다. 그림자에 불과하다거나 자연 지형이라는 반박도 있었지만, 인간이 만든 구조물이라는 가설도 있어 왔다. 그런데 최근 문제의 지역을 촬영한 선명한 위성사진이 공개되면서 다시 논란이 가열되기 시작했다. 디지털글로브(Digital Globe)사의 위성이 2003년에 촬영한 사진이 일반에 공개된 것이다.
노아의 방주가 실존한다고 믿고 10여 년 동안 연구를 진행해온 포르세 테일러는, 이번에 공개된 사진이 노아의 방주 미스터리를 푸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는 문제의 물체가 노아의 방주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길이와 너비가 6:1 비율로 노아의 방주에 대한 성서 기록과 일치한다는 것이 그가 제시한 논거 중 하나. 아라라트 산허리의 물체 길이는 309미터이다.
언론은 상업 위성사진은 물론 군사 위성 사진들도 속속 공개되고 있기 때문에 머지않아 노아의 방주 미스터리가 풀리게 될 것으로 낙관하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사진 : 디지털글로브사의 상업위성 퀵버드가 2003년 촬영한 사진. ⓒDigital Globe
출처 : www.space.com 이영재 기자 (저작권자 팝뉴스)